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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12, 2009
Sunday, June 28, 2009
Terminator 4 리뷰 (spoiled)
Terminator 4 리뷰 (spoiled)
믿음을 주는 소재와 배우가 만나 더욱 기대를 자아낸 영화. 터미네이터 4.
시간 여행, 암살자와 가디언, 메카닉, 인류 구원, 종말론. 블록 버스터가 되
기 위한 요소를 다 갖추고도 멋들어진 하나의 스토리가 독특히 살아 있는 터
미네이터 시리즈다. 여기에 크리스찬 베일이 존 코너 역을 맡았다. 베트맨 다
크나이트의 주인공 베일이 말이다.
영상미는 합격. 미래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큰 무리 없이 잘 보여주었다. 다
소 메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거슬렸지만 기계에 대항하는 나약한 인
간 항쟁기가 달리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과 창작의 논란
보다는 스토리 전개의 재미가 먼저다.
배우 연기력 합격. 베일의 연기는 역시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 다만 영화
중반 활약이 뜸해진 탓에 그의
얼굴을 충분히 즐기지 못해 아쉽다. 다른 주인공인 남자 배우의 우직하면서
도 강한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축구 선수 루니를 닮은 배우. 기대되는 액션
배우다.
기존 터미네이터의 재미를 이어가지 못해 아쉽다. 터미네이터에 열광하는 이
유는 현대에 나타난 미래 메카닉의 암살과 가디언의 충동이다. 존 코너는 찌
질해야 하고 모성애와 부성애를 모두 가진 사라 코너가 나와야 터미네이터
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배경이 미래다. 흡사 매트릭스 같다. 존 코너는 예견
된 인류 구원자이나 찌질한 어린아이에서 진짜 지구 영웅이 되어버렸다. 사
라 코너는 녹음이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지금까지 등장한 터미네이터 중 최강은 역시 2편에서의 액체 변환 메카닉이었
다. 이번 영화 속 터미네이터는 너무 우직하고 느렸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주
길 바란다는 것 첫 터미네이터 메카닉을 잡은 맥지 감독에게 무리한 바람이었
을까.
Drag me to Hell 리뷰 (spoiled)
Drag me to Hell
80년식 B급 공포영화. Cheap함의 카타르시스.
후비진 뒷골목 자장면을 일부러 찾아먹으면서 "바로 이맛이야"를 외치는 기분
이다. 지독히도 재미없는 스파이더 맨을 찍어대던 샘 레이미 감독이 사실 "B
급 스타일 공포영화"전문 감독이라는 것도 래그 미투 헬이 개봉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즉, 내겐 샘 레이미의 옛 스타일을 그리워한다는가 따위의 유전
자란 애시당초 없던 말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영화았다. "김씨 표류기 이후 올해 박장대소 하며 본 영화
는 드래그 미투 헬이 유일하다. 말도 안되는 살정과 내용 전개에 묘한 쾌감
이 느껴진다.
쾌감은 여자 주인공의 변화와 괘를 같이한다. 직장에서 사귀는 남자 친구의
부모에게서 인정 받지 못하며 속 알이만 하는 여자 주인공. 마지막 공동묘지
장면에서 무덤을 파헤치고 노파 시체의 턱에 한방 먹일 때 그 쾌감은 가슴 찡
한 무엇인가를 울려주는 시원함 그 자체다.
소재도 장면도 근래 헐리웃 블록 버스트에 비할 수 없이 초라한 이 영화가 이
만한 감동을 주는 것은 감독의 역량 때문이다. 마치 3류 악단을 지휘하는 세
계적 마에스트로의 음악을 듣는 기분이랄까.
음악, 화면, 장면간 호흡이 딱 적절한 수준만큼 펼쳐진다. 어떤 형태의 환타
지라 하더라도 재미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현란한 CG라 생각하는 환상을 버리
게 해주는 영화.
Tuesday, June 09, 2009
iPhone...비극
2009년 WWDC의 결론은 "비극"
- 비극 1: 한국 iPhone 발매국에도 또 한번 제외국가 전체를 Cover하는 3G 통신망 + 햅틱에서 옴니아를 비롯한 각종 Smartphone 보급 + SONY의 엑스페리아와 같은 외산 폰의 판매 + iPhone 2G에서 3G에 이르기까지 2번의 발매 불발이번에는 반드시 한국에서 iPhone을 발매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기사들이 난립한 가운데 2009년 WWDC에서도 한국 iPhone 발매국에서 제외
- 비극 2: What is the difference iPhone 3G vs. iPhone 3GS
S가 추가된 이름과 빨라진 성능, 그밖에 Minor한 요소들을 제외하면 달라진 것이 없는 3GS.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디자인과 액정. 최소 뒤면 애플 로고에 불빛이 들어오는(맥북의 상징과도 같은) 형태라도 기대했으나 불발. AMOLED를 사용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액정도 그대로. 애플 입장에서 합리적인 가격과 더 나은 Hardware의 갈림길에서 가격을 선택한듯.
- 희망 1: 만약 Touch S가 출시된다면...
카메라와 GPS가 추가된 새로운 터치가 출시된다면!!!
...이런거에 희망을 거는 한국의 통신 시장은 진정 미래가 없는 것인지도...
Friday, May 15, 2009
이것 저것 잡다한
다음 주 월요일. 5월 18일부터 A.T. Kearney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잡 쉐어링에 관공서 일용직으로 실업률 숫자 줄이기에 아우성인 정부의 바람
에 부합하는 실업자에서 직업인으로의 전환이다.
잘 하면 풀 타임으로 전환도 가능한 꽤나 솔깃한 제안으로 시작하는 늦각이
인턴에 적잖은 감정적 파동이 일어난다. 이대로 한 두달 하고난 뒤 고대하고
기대하던 전략 컨설턴트, 그것도 유수한 역사를 자랑하는 외국계 컨설턴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인생은 무엇이든 도전하고 몰입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한 장의 이력서에 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고의 진리다. 지
문은 타고 나지만 인생의 나이테는 결국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
같은 대학 같은 과 선배와 함께 일하고 역시 같은 과 후배와 동기가 되었다.
졸업 전 책상에 쌓인 명함만 4종류다. 벽에 명함 컬렉션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보다.
여자친구가 걱정이다. 백수 생활내내 함께 지냈는데 이제 학교도 혼자 다니
고 밥도 홀로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연애는 잔인하다. 서로
를 독점하고 고립시킨다. 더욱이 이러한 강압이 절대 선의에 의해 이루어진
다. 상호 노력과 희생만이 이 흐름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
차를 갖고 싶다. 현실성도 있다. 취업을 하면 패밀리 카를
한 대 사기로 했었다. 구입비는 부모님이 유지비는 내가 부담하고서 말이다.
아직 인턴에 불과하니 명분이 딱 드러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멀리 사는 여자
친구를 위해서라도, 갈수록 늦게 귀가하게 되는 석사님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준중형 차 한대쯤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500만 원 예산만 떨어진다
면 당장이라도 도전해볼만 한 옵션이다.
기아의 포르테와 현대의 아반떼, 대우의 라세티 프리미어가 좋다고 생각한
다. 네비는 필수. 가죽 시티와 최고급형 옵션 기준이다. ABS, 오토 모두 포함
한 1년 미만의 무사고 중고 차량.
한달에 30은 기본으로 들어간다면 인턴 박봉에 빠듯할 것이다. 그래도 주말에
나 이용할 것이고 매일 이용하지도 않는다면, 특히 가족 구성원 각자 연료비
를 낸다면 내가 부담할 비용은 보험료에 장거리 연료비 수준이다. 해볼만 하
다.
주거래 은행을 바꿔야겠다. 국민은행은 참 불편하다. 당장 월급 통장을 우리
은행으로 바꾸면 될 것이다. 고객 편의를 생각하는 은행 서비스가 간절하다.
Wednesday, May 13, 2009
늦은 트라우마
누구에게나 두려운 장소가 있다. 나에게도 그러한 곳이
있다. 어린 시절 달라붙은 트라우마 따위가 아니다. 대학 시절 생겨버린 충격
과 공포다.
대한상공회의소.
오래 도록 가고 싶었던 회사의 본사가 있는 그 곳. 무수히
인턴 지원에도 떨어지고 정규 지원에도 떨어진 그 곳. 주변의 스타벅스도 커
피빈도 두려움의 범주에 포함되어 버렸다.
깨야 하는데 방법이 쉽지 않다.날마다 그것으로 출근하며 일터로 삼아버리지
라도 않으면 방법이 없다.
청년 실업
청년실업을 온몸으로 느끼며 악착 같이 학교 취업 게시판을 들락 거린다.
오...하나님. 역시 직업이라는 건 먼저 마음 먹은 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
라 상황과 티이밍이 맞는 이의 것이로구나. 우연과 우연이 만나 인생의 흐름
이 만들어지니 사람마다 저만의 독창적 리듬을 가지는 것만 같다.
RA again...
AT Kearney RA 인터뷰를 보았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주부터 일을 시작할 것 같다.
Consultant는 한번 더 인턴을 한 뒤에 되기로 해야겠다.
한번 길에 들어 선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 독한 컨설팅이라는 직업이 다른 어떤 직업보다 편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다
니...
Tuesday, May 12, 2009
살이 찌다
배가 나왔다.
살이 찐다는 느낌이 얼마만인가. 실로 경의로운 체험이다. 3년 넘게 계속해
온 운동을 끊고 연애를 하면서 먹기에 힘쓴 결과다.
모든 일에는 trade off가 존재한다. 살이 찌니 배가 나온 대신 볼 살이 올랐
다. 얼굴 골격이 다소 도드라지는 탓에살이 없을 땐 좋은 말로 강해보인다,
나쁜 말로 빈해 보인다 들었다.
나이는 많아지고 취업은 늦어지고 고민은 많아지는데 속절없이 살만 찌고 있
다.
날마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운동이 다시 시작하려니 어쩌면 이렇게 부담일까.
4호선 상행선
무료하게 나이를 먹는 다는 건 슬픈 일 이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들이 연신 툿기지도 않은 말로
옥신각신 하는 것이 신경쓰이는 것도 한편으론 슬픈 일 이다.
늦은 밤. 4호선 상행선에서 보이는 얼굴들은 취해 있거나 화가 나 있거나 피
곤에 쩔어 있을 뿐이다.
사당 내려야 할 시간.
Saturday, May 09, 2009
박찬욱의 [박쥐]_자기합리화에 관한 자기비판
불친절, 불편함, 그러나 기대 이상의 명작
불친절하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보여준 박찬욱 특유의 상징법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서술법은 [박쥐]에서 더 악화되었다.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스토리는 간단 명료하다. 그러나 그 안 쪽에 숨겨진 스토리, 감독이 표출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복잡하고 엉클어져 있다. “왜?”라는 질문, “무슨 의미?”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로 비춰진다. 그래서 고민해야 하고 많은 노력을 요하는 영화다.
불편하다. 피가 난자하고 순간 순간 등장하는 잔인성이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 타 뱀파이어 영화에서도 피와 살인은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이는 장면들은 비 현실적이기에 섬듯하지 않다. 그러나 [박쥐]는 다르다. 현실에서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면 실제 그러할 장면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살인의 방법과 피를 취하는 방법 역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구들과 상황을 이용하여 묘사한다. 발목을 자르고 머리를 위로해서 빨래처럼 매달면 피가 전부 빠지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소름은 어떤 강렬한 영상보다 자극적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한 많은 장치들이 존재한다.
명작이다. 가장 좋아하는 박찬욱의 영화는 [올드보이]. 스토리, 영상미, 연출, 연기, 메세지, 신선함, …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았던 최고의 명작이었다. [박쥐] 역시 그러한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영화다.
합리주의에 빠진 이성 + 무분별한 감성 = 파멸
신부인 상현은 인간의 이성을 상징한다. 이성과 감성은 대립되는 존재다. 이성은 감성을 제어하고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세시대 이성은 종교를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감성인 성욕을 억누르고 추상적인 신의 존재를 추구하는 신학은 그 자체가 이성의 결집체다. 상현은 감성을 억누르며 살아온 인물이다. 천주교 고아원에서 성장했고 여자와 입맞춤도 한적 없는 존재다. 자연스러운 성적 욕구는 자해를 통해 억누른다. 아픈 사람을 돕고 어린 아이들에게 마술을 보일 때도 그가 보이는 표정은 씁쓸함과 허무가 드리워졌다.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다. 단 한번도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적 없는 상현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프리카에 가는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그는 아프리카로 떠나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실험에 참가한다.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유서와 다름 없는 영상을 녹화하는 장면에서 상현은 자살을 기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되뇌이는 기도문에서도 철저한 자기 파괴적인 내면이 느껴진다. 상현은 현실의 삶에 대해 미련이 없다. 즐거움이 없기에 미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이들은 죽음을 동경한다.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죽음이다. 그러나 신부로서 자살은 최악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자살은 자기 모순이다. 그래서 죽음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실험에 참가한다. 이제 명분이 분명해졌다. 선한 자살이 된 것이다.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자살을 위해 참가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라는 요구 앞에 무표정하지만 당황한듯한 모습은 자신의 합리화가 누군가에게 들킴을 당함에서 오는 양심의 가책일 것이다.
태주는 감성을 상징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현실은 그의 감성을 억압한다. 그러나 상현과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뱀파이어가 된 이후, 태주는 철저히 감성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변해간다. 그녀의 허벅지에 난 상처가 그것을 상징한다. 그 상처는 본인이 스스로를 자해한 것이다. 성적 불구자에 가까운 남편에 대한 불만과 자신을 강아지 수준으로 대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자해로 드러난다. 몽유병이라는 핑계로 매일 맨발로 뛰쳐나가 달리는 것으로 그녀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매일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억압과 권태로운 현실로.
상현의 자기 합리화
상현의 자기 합리화는 영화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이다. 자살을 이루기 위한 합리화인 아프리카 실험 참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함이었으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되어버린 뱀파이어. 뱀파이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되는 피. 살인이 아닌 피는 정당하다는 자기 논리. 먼저 자신을 원했기 때문에 태주를 받아들인다는 태도. 권위와 신앙, 책임을 버리고 뱀파이어가 되기리를 희망하는 대신부의 살해. 폭행당하는 태주를 위한 강우의 살해. 태주를 살리기 위해 뱀파이어를 만들고 그 이후 일어나는 살인과 사건에 대한 책임 회피.
상현은 딱 한번 살인을 한다. 그 대상이 대신부다. 자신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이를 죽이는 것은 그가 뱀파이어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불가항력으로 뱀파이어가 되었기 때문에 죄가 없지만 눈을 뜨기 위해 뱀파어가 되기를 자기 의지로 희망하는 대신부는 죄가 있다. 죄가 있기에 죽어 마땅하다. 신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것이다. 죽음의 벌을 받은 이의 피는 마셔도 된다. 자신이 피를 위해 그를 죽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만나주지 않는 태주에게 찾아가 성토한다. 자신이 뱀파이어인지, 신부인지 모르고 좋아했느냐고 따진다. 당신이 먼저 날 좋아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는 논리다.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자신을 자해하던 힘은 이제 상대방이 먼저 유혹을 했기 때문에 억누를 필요가 없다. 화장실을 부수고 전봇대를 쓰러뜨린다. 감정의 분출이 외부를 향한다.
강우를 죽인다. 태주가 고통받기 때문이다. 허벅지에 난 상처를 보고 그것이 태주를 죽게 할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고통받는 이를 구원하기 위해 살인을 택한다. 그 살인은 정당하다. 한동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상현은 굳게 믿는다. 자신이 친구의 아내를 가로채기 위해 친구를 죽인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불쌍한 여인을 구원하기 위한 살인이라 굳게 믿는다.
태주를 뱀파이어로 만든다. 왜냐면 자신이 분노하여 사람을 죽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두면 태주가 죽게되고 상현은 처음으로 명분없는 살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살려야 한다. 뱀파이어가 되어버렸지만 자신은 살인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의사를 부른다. 태주가 아프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위해 의사를 부르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다. 그러나 태주가 의사를 죽이고 그 피를 마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현이 직접 사람을 죽이고 피를 구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죄를 짓는 것이기에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아닌 의사를 불러다 태주에게 데리고 가는 것이다. 태주가 죄를 지은 것이지 자신이 지은 죄는 아니다.
마작을 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이 상현과 태주의 만행을 알아버리게 된다. 상현은 말 없이 창문을 닫는다. 살인은 태주가 한다. 상현은 모른 체 한켠으로 벗어나 있다. 살인은 하지 않았다. 태주가 그렇게 한 것이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태주가 모두 죽인 뒤에 피를 남김 없이 빼내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살인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더 잔인 무도한 내면에 가득 차 있다는 의미다. 태주가 죽이고 난 시체의 발목을 자르고 피를 빼는 것은 직접한다. 대신부에게 그랬듯이 이미 죽은 이들의 피를 취하는 것은 죄가 아니기 때문에 단호하고 신속하다. 필리핀 여자의 피를 마신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는다. 살인은 하지 않는다. 상현은 여전히 자신이 신념에 따라, 이성에 따라 죄를 범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도 강간, 그리고 자살
2명의 마작 친구를 죽이고 난 뒤 상현은 생각한다. 더 이상 자신의 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자기 합리화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태주는 제어할 수 없는 광기를 보이고 있고 자신 역시 이성적인 척 할 수 없다. 자살을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러나 여전히 자살은 해서는 안 될 가장 큰 죄이다. 아직 이성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내면을 부쉬기 전에는 가장 큰 죄인 자살을 실행할 수 없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의 캠프에 찾아간다. 믿음에 충만한 이들, 그 중에서 가장 신실한 믿음을 가진 여신도를 강간한다. 이로서 상현은 자신이 악인이라는 자기 확신을 확립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이성적인 존재이다. 강간은 단지 시늉에 불과하다. 여신도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막지 않았다. 다른 신도들이 몰려와 들켰을 때 정신이 나간듯한 상현은 발기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강간이 목적이 아니라 신도들의 저주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원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한 악인이며 결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 위해서다. 이제 자살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자신이 낳은 악인 태주까지 함께 자결한다. 극렬히 저항하는 태주를 힘으로 제압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원하지 않는 태주까지 함께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아직까지 남은 신부로서의 책임감과 양심, 이성적 행위일 것이다. 신도를 강간하고 자살을 택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여전히 이성의 굴레 속에 머물고 있다. 강우 어머니가 구출될 수 있도록 휴대폰을 손에 쥐어주는 행위도 그러하다. 그녀가 자신과 태주의 자결을 보게 함으로써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파멸의 순간에서조차 그는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죄 사함을 원하는 신자의 행위를 씻지 못하는 것이다.
현실의 우리 모두 뱀파이어가 된 신부
뱀파이어이기에, 신부이기에 상현은 그러한 자기 합리화 억압과 모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현실의 우리와 무관한가.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해악이 되는 행위이지만 자기 자신의 이성과 논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그만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이 아닌가. 온갖 죄를 지어 돈을 벌고 그 죄에 따르는 벌을 면하기 위해 벌어들인 돈으로 면죄부를 사는 중세인들의 치졸한 자기 합리화가 현대에는 사라진 것인가. 정부와 국회에 현실의 불합리와 고통의 원인을 전가하는 우리들, 그 우리들이 그 정부와 의회에 권한과 역할을 부여한 존재들이 아닌가. 가족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빼앗고 나 자신이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 저지른 악의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는 현대인의 상식과 살아가는 노하우가 아닌가.
흥행해서는 안 될 영화 [박쥐]
[박쥐]가 흥행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불친절한 내용 전개와 불편한 화면들을 겨우 파해쳐 들어가 만날 수 있는 메세지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더럽고 고통스러운 자기 비판이다. 그 어느 곳에도 즐거움이나 카타르시스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이런 영화가 흥행을 한다는 것은, 재미있을 것이라 잘못 생각한 관객들이 상업적 마케팅에 속아 찾아든 경우나 한국인의 자기 비판에 대한 욕구가 강할 경우에나 성립한다. 가능성은 전자에만 존재하며 전자의 경우에도 영화의 실제 내용과 무관하게 관람하는 상영 초기를 제외하면 그 생명력을 잃는다. 결국 [박쥐]의 흥행은 불가능하며 흥행해서도 안 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비록 더럽고 가슴 아픈 모습이라도 그것이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모든 허울을 벗어버린 나체로 그 앞에 서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 만약 그런 이라면 [박쥐]는 근래 그 어떤 영화보다 강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줄 영화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욕구는 상현이, 태주가 필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만큼 강렬하다.
Blade Runner 뒤늦은 감상
믿을 수 없는 명작
SF의 고전이나 바이블이라고 일컬어지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 아직 충분히 젊은 해리슨 포드 특유의 표정 연기가 돋보인 영화이다. 1993년 출시된 이 영화가 남긴 깊은 인상은 묵시록적인 미래 도시의 풍경과 예술영화에 버금가는 네러티브.
우울한 미래
이 영화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곳도 아니다. 배경인 LA는 온갖 인종이 뒤섞여 있고 항상 축축한 비가 내리고 있다. 주인공 데커스는 노점상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다닌다. 가족도 없이 홀로 살아가는 주인공은 특별한 목표 의식 없이 수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술에 의지해 잠을 청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배경이 주는 메세지
LA가 배경인 헐리웃 영화.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 에니메이션 공각 기동대가 연상된다. 아마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 짐작된다. 우울한 배경과 상업주의로 물들인 세계관. 정적인 화면 구성까지 모두 공각 기동대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LA의 대형 광고판은 일본 여성의 광고판으로 뒤덮혀있다. 일본인에 의한 자본 지배가 일어날 것이라 예언한듯 하다. 자동차는 날아다닐 수 있지만 경찰차와 광고를 위한 대형 비행물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즐비한 노점상들의 모습은 현대의 그것보다 더 비참하다.
미래는 가능성이 현실화 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편의를 누릴 수는 없다. 문제는 돈이며 돈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 영화가 묵시록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현실감이 더해지는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실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이 공간과 사상을 지배하고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최소한의 삶의 기준에 겨우 걸쳐진 상태에서 살아간다.
영화가 던지는 의문
영화의 전체 스토리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6명의 인조인간들이 감정과 삶에 대한 집착을 가지면서 4년에 한정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우주 식민지에서 탈출하여 지구에 들어와 자신들을 만들어낸 회사에 잠입하지만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데커드라는 형사가 투입되어 수사를 펼치고 인조인간이지만 데커드와 사랑에 빠지는 레이첼이 등장하며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은 자신을 만들어낸 회사의 회장을 만나 생명을 늘려주기를 원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살해한다. 잔인한 방법으로. 그리고 자신을 인도한 인간 동료도 살해한다. 그는 같은 여자 인조인간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녀를 주인공 데커드가 죽이게 된다. 여자 인조인간이 살해된 공간에서 전투 인조인간과 데커드는 맞닥들이게 된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데커드는 쉽게 잡히게 되고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찰라의 순간. 전투 인조인간이 그를 살린다. 그리고 생명이 다 되어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왜 그토록 잔인무도한 인조인간이 데커드를 살린 것일까. 영화는 친절하지 않는다. 묵묵히 철학적인 메세지를 간헐적으로 던지며 정적인 여백을 던질 뿐이다. 사랑하는 이가 사라지고 생명이 다하는 상황에서 분노라는 존재도 희석되어버린 것일까. 현실에 대한 씁쓸하고 자조적인 철학을 죽기 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욕구가 복수심을 덮어버린 것일까.
레이첼은 자신이 인간이라 믿고 살아온 인조인간이다. 데커드를 만나 자신의 본래 존재를 깨닫게 되고 좌절하지만 데커드의 품으로 달려든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이지만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데커드 역시 레이첼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한계가 존재하는 사랑. 쫒기고 있는 레이첼과 그녀를 잡아야 하는 경찰인 데커드. 레이첼은 수명이 4년 뿐이다. 영화의 끝장면은 둘의 도피를 예상하게 한다. 그러나 존재가 다르고 시간이 한정된 이 둘이 도피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순수와 완전함을 동시에 표출하는 레이첼 역의 숀 영의 매력이 잊혀지지 않는다.
철학과 영상의 미학
15년 전 영화, 그것도 SF 장르의 영화다. 화려한 CG와 각종 특수 장비에 익숙한 눈으로 바라본 옛날 SF 영화에 감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미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묵시록적인, 그러나 미래 도시 한켠에 분명 존재할 것만 같은 배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연출력이 놀랍다. 경찰과 전투 인조인간이 등장하지만 확끈한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철학적 내러티브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결국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의 가치는 내부를 가득 채운 철학적 탄탄함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난 뒤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명력이 고전을 만든다.
